트위터와 스포츠

김연아 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트위터로 알았다. 곧바로 텔레비전을 켜서 채널을 NBC에 맞췄다. 무한도전으로 접한 봅슬레이 경기와 알파인 스키 등이 교차 방송되고 있었다. 저녁 먹고 나서 보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낮 경기였다. 생방송으로 해주는 줄 알았더니 녹화 경기였다. 그냥 텔레비전으로 다른 경기를 지켜보면서 김연아 경기를 기다렸다. 트윗에서 조금 있으면 김연아가 나온다고 해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봤지만 다른 경기만 보여줬다. 이것도 녹화방송하려는 모양이군. 미국인이 유력한 우승 후보가 아니라서 그런가 생각했다.

경기의 긴장감을 즐기려고 트윗도 끄고 인터넷 창도 닫고 텔레비전만 켜놓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김연아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이미 끝난 경기지만 내게는 생중계와 비슷했다. 경기가 끝나고 트윗을 켜니 엄청난 타임라인이 몰려왔다. 경기에 대한 반응도 읽고 내 생각도 정리하면서 트윗을 읽어 내려갔다.

인터넷이 텔레비전 시청자를 빼앗아간다고 한탄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 추세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슈퍼볼 중계도 시청률 기록을 세웠고, 그래미 시상식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올림픽 중계 역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텔레비전의 전성기가 돌아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인터넷을 하면서 동시에 텔레비전을 즐기는 사람이 나타난 점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만남이 거실에서 이뤄졌다.

내가 자주 다니던 대중문화 사이트에서도 이미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융합은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 텔레비전으로 그래미 시상식을 보면서 한쪽에는 노트북으로 트윗을 읽을 수 있었다. 사이트의 운영자가 실시간으로 트윗에 의견을 게시하였다. 생각과 감정의 공유는 트윗의 가장 큰 장점이다. 텔레비전을 함께 보는 사람을 묶어주는 새로운 채널의 탄생이다.

인터넷은 텔레비전의 적이 아니라 친구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함께 힘을 합쳐 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는 트윗에 자극받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올림픽 텔레비전 중계를 지켜봤다. 텔레비전으로 구글 검색에 대한 광고도 방송된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다뤘던 북극곰의 위기를 구글로 검색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여자 피겨 스케이트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고, 경기와 함께 해설자의 논평도 트윗으로 중계되었고 그에 관한 생각도 공유되었다. 연아를 윤아로 잘못 발음하는 중계자를 지적하는 트윗도 있었고, 어려운 피겨 스케이트 기술을 평하는 트윗도 보였다. 텔레비전 시청하던 개인적 시간이 마치 호프집에서 어울려 경기를 지켜보는 사교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거실을 떠나지도 않았는데도 공공장소에 와있는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