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심장부에서 시위한 마이클 무어

코미디와 다큐멘터리가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마이클 무어 감독이 이번에 도전한 주제는 놀랍게도 “자본주의”다. 그는 끔찍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묘한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 장면에서 그는 재치있게 자신의 주장을 웃음과 함께 관객에게 전달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 금융회사와 증권거래소에서 확성기를 들고 당돌하게 외쳤다. “당신들을 시민의 이름으로 체포한다.”

마이클 무어는 지난 20년간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미국 시민의 삶”을 망가뜨린 죄악과 싸웠다. 의료산업, 무기산업, 부시 행정부, 대기업, 어느 것 하나도 만만한 상대는 없었다. 자본주의는 기존의 상대를 모두 아우르는 공공의 적이 분명하다. 자본주의를 상대로 한 그의 싸움이 승리할 수 있을까? 마이클 무어는 자본주의를 뒤집으려는 급진적 사회주의자인가? 아니다. 그가 보여준 대안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온건한 개혁에 가깝다.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현대에 되살리는 일에 희망을 걸고 있다.

상위 1%의 부자가 미국 전체 부의 95%를 소유하고 있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늘어나고 사회복지는 망가진 지 오래되었다. 공정한 자유 경쟁 시장의 이상은 독과점 기업의 횡포로 무너졌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누구나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이상이 실현되는 국가가 미국인가? 자본주의 이상에 푹 빠져서 계속해서 늘어나는 빈곤층과 노숙자에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는 것도 현재의 미국이다. 마이클 무어가 파고든 현실의 모순이 바로 여기다.

첫 장면은 로마제국의 귀족들이 어떤 사치스런 삶을 살았는지 보여준다. 로마에 비교될 수 있는 막강한 제국을 건설한 미국 부자나 로마 귀족이나 비슷하다. 평범한 미국 시민을 착취해서 얻은 막대한 부를 거머쥔 부자에게 이 영화는 아주 불편하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부의 차이가 생기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지금의 현실은 지나치다. 상위 1% 부자가 95%를 가지고, 남은 5%의 부를 나머지 95%가 나눠 가져야만 하는 상황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마이클 무어는 추상적 이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자본주의에 착취당하는 사람을 직접 만났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집에 쫓겨난 사람. 도저히 상환할 수 없는 수준으로 대출금리를 계속 올려서 결국에 집을 빼앗는 금융권의 기업윤리를 문제 삼는다. 10만 불의 등록금 신용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하는 비행기 조종사도 만났다. 그의 연봉은 놀랍게도 2만 불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버펄로에서 추락한 비행기 조종사도 비슷한 처지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노동자 권익이 바닥을 친 건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이다. 노조를 노골적으로 사악한 집단을 몰아세우고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이 성공하면서 노동자 권익은 후퇴했다. 고용주가 마음대로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하거나 비윤리적으로 다루어도 제재할 수단이 사라졌다. 국가나 공공부문이 축소되면서 기업은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일반 노동자는 그 자유를 점점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막대한 정부지원금을 쏟아부어도 실업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는 해고당할 불안에 떨어도 CEO는 보너스를 받아서 휴가를 떠나는 세상이다. 마이클 무어는 그런 모순된 현실을 보여주면서 이래도 자본주의가 세상 최고의 경제체제이냐고 반문한다.

마이클 무어는 이 영화로 이론적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는 일반인의 상식이나 경험을 통해서 씁쓸한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증권거래소를 도박장으로 비유하는 그의 풍자는 적절했다. 도박장에서 무슨 윤리 타령인가? 어떻게 해서든지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다. 노동자의 피와 땀은 전광판의 숫자로 보일 뿐이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 비인간적 착취는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규제나 통제 없는 자본주의는 돈만 버는 일에 눈이 멀게 마련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를 향한 맹목적 사랑에 빠진 한국의 미래가 염려되었다. 빈부의 격차가 늘어나고 공공서비스와 복지 등 약자를 보호할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지게 되면 더 처참한 현실이 펼쳐질 것이다. 부자의 세금을 줄여주고 기업규제를 없애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레이건 경제정책과 똑같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래는 지금의 미국이 아닐까.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서비스 개혁이나 공공서비스 개선 정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미 부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들이 더는 비윤리적으로 다른 인간을 착취할 권리는 없다. 마지막으로 영화관 근처를 둘러보니 온통 은행이다. JP모건체이스, 웰스파고, 키뱅크의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주말이라서 거리는 한산했지만, 저 멀리 노숙자 한 명이 쓰레기통을 뒤져서 카트에 뭔가를 담고 있었다. 이게 자본주의 현실이다.

레비 스트로스를 추억하며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그의 삶에 관한 글은 뉴욕타임스 부고기사를 추천한다. 이보다 짧지만 중요한 흐름을 잘 잡은 BBC 기사도 읽어볼 만하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구조주의 철학에서 빠질 수 없는 레비-스트로스와 연관된 나의 추억이란 대부분 책이나 논문이다. 대학원에서 이론 수업을 들을 때마다 구조주의 철학에서 그는 항상 등장하는 학자였다. 그는 소쉬르가 마련한 구조주의 언어학을 인간의 삶에 처음으로 적용해서 구조주의 인류학 연구의 장을 열었다. 그는 서구 문명사회에 관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미개하다고 무시만 했던 원시사회를 똑같은 시각으로 접근했다. 그의 철학인 구조주의는 서구사회나 원시사회에 공통된 구조를 찾는 일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푸코, 라깡, 바르트 등 후기구조주의의 비판을 받으면서 역사 속으로 잊혔지만 구조주의가 남긴 유산은 무시할 수 없다. 후기구조주의도 인간사회를 관통하는 보편적 구조는 부정했지만 구조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인간사회의 작동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구조주의 유산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후기구조주의와 막시즘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러다 보니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하게 되었다. 레비-스트로스는 넘어야 하는 산이었고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의 글에 줄을 그어가며 내 생각을 정리하며 비판하는 동안에 그와 나는 굉장히 친숙한 논쟁자처럼 느껴졌다. 말을 한 번도 섞어본 적이 없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레비-스트로스와 푸코가 논쟁하는 상상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항상 푸코의 편이었지만 레비-스트로스 선생의 입장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었다.

레비-스트로스의 글은 많이 읽었지만 그의 삶에 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후기구조주의자들도 이미 세상을 떴기 때문에 이분도 이미 오래전에 저세상으로 가신 줄로만 알았다. 신화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은 기억나지만, 아마존 부족사회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른다. 그의 삶에 대한 글도 한번 읽어볼 생각이다. 그의 이론의 잉태한 삶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사상적 추억도 나의 경험이다. 비록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학자이지만 그의 글에 대한 나의 기억은 각별했다. 안녕,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몸은 떠났지만, 그의 글은 아직도 논쟁거리를 던져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을 확신한다.

음식과 인간의 대결

“인간 대 음식”을 처음 봤을 때, 즐겁다기보다 괴로웠다. 이 쇼의 진행자 아담 리치맨이 저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다가 심장마비로 죽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2008년에 시작된 이 쇼는 미국 여행 케이블 텔레비전의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전체 구성은 간단하다. 아담 리치맨은 미국 도시를 순회하며 그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을 맛보거나 음식 문화를 소개한다. 여기서 끝나면 평범한 여행 소개 프로그램이 되었겠지만, 음식 대결과 결합하여 독특한 스포츠 경기가 된다. 인간이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양의 음식을 정해진 시간 동안 먹어치워야 한다. 주로 다량의 음식에 도전하지만, 가끔 매운 음식에 도전하기도 한다. 보기만 해도 맛난 음식이 순간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서 탁자 위에 놓여있다.

여행 케이블 텔레비전은 기이한 진행자가 다수다. 요리사 출신 여행가 앤서니 보덴도 평범한 여행을 하지 않는다. 현지 종교의식을 체험하기도 하고, 스웨덴에 가서 아바의 음반을 부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에 와서 노래방 체험을 하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앤드류 짐머맨은 세계를 여행하며 기이한 음식만 먹고 다닌다. 벌레나 뱀도 서슴지 않고 먹기로 유명하다. 이 방송국에서 사만다 브라운을 빼면 평범한 여행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평소에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아담 리치맨은 배우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식당 기행기를 썼다. 여행과 음식을 함께 즐기던 그의 일상이 케이블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리한 음식 먹기가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아담 리치맨은 평소에도 운동을 꾸준히 한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상당한 콜레스테롤이 쌓여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거대한 체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몸으로도 절대 보이지 않는다.

아담 리치맨은 한국의 식신 정준하에 비할만한 대식가다. 그의 체구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음식을 재빨리 먹어치운다. 그동안 음식과 싸워서 이긴 전적도 나쁘지 않다. 그는 시즌1에서 11승 7패를 기록했다. 그는 음식을 단순히 많이 먹는 거로 시즌 2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식당 주인, 손님들과 잘 어울리면서 프로그램을 매끄럽게 진행한다.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는 괴로움을 웃음으로 승화할 줄 아는 능력도 지녔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쇼를 맡았다면 오래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지루하게 많이 먹는 걸 흥미 있게 2년 가까이 지켜볼 시청자는 많지 않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볼거리는 초반부에 가끔 들어가는 판타지다. 주로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는 스트레스 탓에 생긴 환상이다. 성공한 배우가 아니었던 아담 리치맨은 이 장면에서 배우의 끼를 마음껏 드러낸다.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걸 금하는 문화권에서 자란 나는 이런 프로그램이 마음 편하게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음식만 유별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순환이 빠르게 일어나는 사회에서 대식은 오히려 권장할만한 행위다. 패스트푸드점의 음식량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매운 음식과 거대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아담 리치맨의 위가 걱정된다. 소화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그도 별수 없다. 명물 식당을 돌아다니며 그는 새로운 도전 음식을 만난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은 아니다. 물론 맛이 없는 음식보다야 낫겠지만. 역시 제일 좋은 건 맛있는 음식을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다. 필요 이상 먹는 음식은 체하기 마련이다.

대안시장으로 부활하는 미국 파머스마켓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파이어니어 공원에 들어서자 입구부터 왁자지껄한 사람 소리에 압도된다. 바비큐, 핫도그, 통닭 냄새가 진동한다. 멕시코 음식 가판대에는 50여 명의 사람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중앙 잔디밭에서 흥겨운 음악이 들려와 음식 냄새와 사람 사이로 스며들어 한 편의 드라마를 이룬다.

곳곳에서 옥수수, 사과, 고추, 양배추, 치즈, 쇠고기 등 농작물 판매가 한창이다. 수북하게 쌓인 멜론에 유성 펜으로 휘갈겨 쓴 가격표가 이색적이다. 밀짚모자를 쓴 아저씨가 저울에 멜론을 달아보고 싸게 주는 거라면서 손님에서 팔고 있다. 가판과 수많은 사람으로 좁아진 공원은 한껏 멋을 내고 나온 애완견들로 더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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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트레이크시티 파이어니어 공원은 1990년대 초반에는 마약 거래상의 아지트였다고 한다. 지금은 농산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풍선으로 자전거를 만들어 아이에게 건네는 피에로도 보였다. 배가 고프면 빵도 사 먹을 수 있고 심심하면 잔디밭에 앉아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저녁거리나 동네 특산품 꿀이나 치즈를 사서 돌아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마치 시골 장터와 지역 축제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머스마켓’의 풍경이다.

매주 두 번의 ‘잔치’가 열리는 파이어니어 공원

내가 사는 동네인 솔트레이크시티 파머스마켓은 매년 6월에서 10월까지 화요일 오후와 토요일 오전에 열린다. 올해로 벌써 17년째다. 매년 방문객이 늘어 올해는 200개가 넘는 부스가 설치됐다.

파머스마켓은 도시 근처의 농민들이 자신이 직접 기른 과일, 채소, 고기 등 각종 농산물을 주기적으로 파는 공공시장을 말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간상인 없이 직접 만나는 직거래 장터다. 우리나라의 5일장과 비슷하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축제이자 아이들 생태 학습장이다.

이름은 ‘농민시장’이지만, 농민만을 위한 시장이 아니다. 인근의 식당, 빵 가게, 커피하우스도 부스를 마련하고 음식과 음료를 말고 가게 홍보도 한다. 지역의 록그룹도 이곳에서 공연을 준비한다. 행사를 위한 주차장은 근처 식당에서 제공한다. 동네 은행은 이용자들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임시 현금지급기를 설치한다. 이곳은 공예품 시장도 함께 겸하고 있어서 손으로 직접 짠 옷이나 카펫을 사거나 다양한 공예품도 구경할 수 있다.

솔트레이크시티 근처 오렘(Orem)에서 5대째 농사를 짓는다는 베리 쿡은 더는 대형슈퍼에 농작물을 팔아서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아 파머스마켓에 나오게 됐다고 말한다. 중소규모 농장이 중간 상인에게 농작물을 헐값에 넘기면 농장운영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농작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놓인 장막을 걷어내면 비용도 상당히 줄고 인간미 넘치는 만남까지 이뤄진다며 좋아한다.

사실, 파머스마켓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농촌 사람이 재배한 농산물을 직접 가져다가 도시에 파는 일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도시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농산물을 시장에서 바로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좋았고, 농촌 사람들은 농산물이 숙성할 무렵 바로 내다 팔 수 있어서 좋았다.

농민 감소와 함께 쇠락한 농업

그런데 농민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1920년 전체 인구의 30.2%를 차지했던 농장 주민 수는 1990년대에 2%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농장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자, 미국 통계청은 1993년부터는 통계도 내지 않았다.

이와 함께 현대식 슈퍼마켓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파머스마켓도 위기를 맞았다. 1960년대에는 100개도 채 되지 않는 파머스마켓만 남았을 정도다. 도시와 농촌이 직접 만나는 공공시장으로서의 파머스마켓은 슈퍼마켓이라는 중간 상인에 가려져 빛을 잃어갔다. 그리고 지역 슈퍼마켓은 다시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요즘은 스미스나 알버슨 같은 대형 슈퍼마켓이 대세를 이룬다. 비즈니스리서치 전문회사 후버스에 따르면, 7만 개가량의 미국 슈퍼마켓 연 매출이 5천억 달러에 달한다. 그리고 그중 크로거, 세이프웨이, 슈퍼벨류 등 상위 50개 거대 체인 슈퍼마켓이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널찍한 주차장과 깨끗한 시설까지 갖추고 전 세계에서 수입한 다양한 농산물까지 파는 대형슈퍼체인의 편리함을 소비자들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 속에서 경제적 소비는 합리적 선택이다. 지역 공동체 속에서 숨 쉬던 동네슈퍼가 경쟁에 밀려 사라지는 것을 지켜줄 여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머스마켓에 다시 가능성의 날개를 달아준 것은 ‘유기농’ 농산물의 등장이었다.

부활의 조짐 “미셸 오바마도 다녀갔답니다”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토마토, 땅콩버터와 이콜라이균에 노출된 시금치 등 음식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주로 고학력층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덜 쓰고 지역에서 키운 유기농을 선호하는 문화가 퍼졌다. 유기농 농산물은 19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부터는 매년 20%씩 성장하고 있다.

1980년과 1987년에는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인 홀푸드마켓과 와일츠오츠가 각각 등장했다. 일반 대형슈퍼마켓도 유기농, 친자연 농산물 비중을 늘리고 있다. 2002년에는 유기농 표시농산물 인증제가 실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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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텔 인터내셔널 조사에 따르면 유기농 제품의 판매량은 2005년 21%, 2006년 22%, 2007년 16%, 2008년 14%가 늘었다. 경제위기로 성장률이 둔화한 것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성장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파머스마켓을 찾는 소비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1976년 미국 연방의회가 발표한 ‘농민-소비자 직접 판매법’을 통해 대안시장으로서의 길을 모색하고 있던 중소규모 농민들은 이런 달라진 분위기를 타고 파머스마켓 재활에 힘을 쏟았다. 미 농무부는 올해 450만 불의 파머스마켓 홍보예산도 책정했고, 또한 6월부터 10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주차장에 자리를 마련해 직접 파머스마켓을 열고 있다.

이제 파머스마켓은 사라졌던 전통을 복원하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 통계에 따르면 1994년에 1755개 정도를 유지하던 파머스마켓은 2009년 현재 5274개로 급격히 증가했다. 워싱턴주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1990년대에 이미 연간 9백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고 9백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성공적 파머스마켓이 되었다. 과거의 파머스마켓과 달라진 점이라면, 대안시장으로서의 이미지가 강조된다는 점이다.

2009년 9월 19일에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도 백악관 근처에 새로 생긴 파머스마켓을 찾았다.

파머스마켓이 진정한 대안 될 수 있을까

파머스마켓은 농민, 소비자, 지방정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농민은 자신이 생산한 농작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으며 기업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다. 이들은 파머스마켓을 통해 자립적 농장 운영의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소비자는 신선하고 건강한 농작물과 지역 특산물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지방정부는 도시 중산층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생긴 도심 슬럼지구화문제를 파머스마켓 유치로 극복 중이다. 특히 직거래 마케팅으로 지역농업을 안정시키고 관광객 유치와 중·소규모 사업을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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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파머스마켓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대형슈퍼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파머스마켓은 대체 시장이라기 보다는 대안 시장이라는 의견이 다수인데, 경제학자 브루스터 닌이 대표적이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모잠비크, 마다가스카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한 사탕수수를 수입해서 쓰게 되었지만 그 수익의 대부분은 농민이 아닌 기업들 몫이었죠. 기업들은 음식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바라봤습니다. 현대의 음식 기업들은 음식을 먹는 소비자와 생산하는 농민의 거리를 최대한 벌려놓고 그 사이에서 최대한 이익을 취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저는 농업이 가족을 먹이고 지역공동체를 먹이고 난 다음에 남는 거로 상업적 이익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장경제에는 지역공동체 해체나 기아 문제를 해결할 출구가 없습니다. 파머스마켓은 시장경제의 대안적 모델로 농작물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를 도울 수 있고 시장에서 소외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저소득층에게는 비용부담이 적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2008년 민텔 인터내셔널 조사에 따르면, 파머스마켓을 찾는 사람들의 56%가 10만 불 이상의 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2만5천 불 이하의 저소득층은 36%밖에 되지 않는다. 미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3500만 명 이상 저소득층에게 푸드 스탬프를 제공해 파머스마켓에서 쓸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것이 진정한 대안이 될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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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머스마켓의 떠들썩한 울림은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소리처럼 들린다. 파머스마켓은 경제적 활동이면서 지역사회를 살리고 함께 사는 문화적 활동이기도 하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팔고 사면서 정겹게 한담을 나누는 풍경은 대형슈퍼에서 결코 찾을 수 없다. 지역경제의 위기를 주변 농업인구와 함께 고민하고 공생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메말라가고 있는 공동체를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의자에 앉은 책

장시간 책을 보면 어깨부터 목까지 뻐근하고 아파서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을 때도 있다. 직업병이지만 독서대를 쓰고부터 통증이 한결 덜하다. 책을 책상 바닥에 그대로 놓고 보자면 고개를 더 숙여야 하는데, 독서대를 쓰면 편안한 각도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한 동작을 유지하는 건 목에 부담을 주니까 가끔 자리에서 일어나 경직된 목 근육을 풀어주는 게 제일 좋다.

책 읽는 일을 직업으로 삼다 보니 독서대는 나의 필수품이다. 예전에 쓰던 독서대는 철사로 된 거라서 자유자재로 움직였지만, 대신에 안정감은 떨어졌다. 두껍거나 무거운 책을 올려놓으면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산 독서대는 안정적인 구조라서 제법 무거운 책도 문제없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도 올려놓고 보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재질도 가벼운 플라스틱과 천이라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다. 높이도 3단계로 조절된다. 게다가 디자인도 꼭 해변 의자를 연상하게 한다.

책의자(Bookchair)라는 이름도 무척 재미있다. 여기에 책을 올려놓으면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름이 주는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책이 앉아있는 모양이 무척 편안해 보인다. 책이 해변 의자에 앉아서 몸을 축 늘어뜨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책의자를 한동안 들고 다니면서 써보니 꽤 만족스럽다. 새로운 독서의 동반자로 함께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해변을 연상시키는 의자 때문에 해변에서 책 읽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아무 고민 없이 해변에서 소설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해가 질 때까지 읽었으면 딱 좋겠다.

낯선 세상으로 오마이텐트

MBC에서 맛보기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오마이텐트”는 소재도 신선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토크쇼와 다큐멘터리가 결합한 복합 장르적 프로그램이다. 요즘처럼 장르구별이 모호해지는 시대적 흐름과 어울린다. 이런 구성은 얼마 전 “서태지 컴백스페셜”에서 이준기가 서태지와 함께 길을 떠나서 여행하며 인터뷰를 하는 형식과 비슷하다. 도시의 번잡함을 떠나서 자연 속에서 스타의 진솔한 내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정형화된 스튜디오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최근에 상당히 많이 제작되고 있다. “패밀리가 떴다,” “1박 2일,” “무한도전”은 현대인에게 낯선 공간이 된 시골 속에서 리얼버라이어티를 찍고 있다. 김제동의 “오마이텐트”도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면서 인터뷰 형식을 가미했다. 스타의 인터뷰는 이미 “무릎팍 도사”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하지만, 김제동은 강호동처럼 상대를 독하게 굴지도 못한다. 대결 구도보다는 친구 사이의 대화처럼 흘러갈 확률이 아주 높다.

어디서 본 듯한 형식이지만 그 조합은 아주 신선하다. 인터뷰와 여행은 서로 공통되는 특징이 있다. 인터뷰는 질문을 통해서 상대를 알아가고 탐구하는 과정이다. 여행은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떠나서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인터뷰나 여행이나 이미 시작하는 순간부터 탐구다. 그래서 둘은 썩 잘 어울린다.

사람은 대체로 익숙한 공간 속에서 지내다 보면 평소에 하던 대로 살기 쉽다.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늘 나누던 대화만 하는 경향이 있다. 여행은 그걸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사람은 낯선 공간에서 길을 찾으려고 낯선 사람에게 길도 물어야 한다. 여행하면서 평소에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낯선 음식이 좋아지기도 하고, 낯선 음악에 빠지기도 한다.

익숙한 공간과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던 사람에게 여행은 그만큼 충격이다. 오마이텐트는 도시에 사는 스타를 자연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데려와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드라마, 영화, 무대, 코미디를 떠나온 스타는 익숙한 자신의 세계가 사라지는 무력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첫 방송은 스타 없이 김제동 혼자서 떠난 여행이었다. 정확히 언제 촬영한 건 알 수 없지만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다 드러난다. 최근에 방송계에 일어나고 있는 우파공작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꽤 된다. 윤도현, 손석희, 김제동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하차하게 되었다. 1950년대 미국에 불었던 매카시즘과 유사한 정치적 상황이 한국 사회에서 재연되고 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김제동이 자연 속에서 자신을 풀어놓았다. 야구를 좋아하지만, 야구 실력은 바닥이 모습도 보여준다. 산에 가는 게 좋다면서 텐트도 만들 줄 몰라서 스탭에서 도움을 구하는 모습도 보였다. 웃기고 싶지만 늘 진지하게 되는 자신이 싫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달리 상대와 여행과 캠핑을 하면서 친해지면서 인터뷰하는 건 더 힘들다. 다른 인터뷰 시간보다 길다는 여유는 있겠지만 시간이 많다고 다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재미있는 대화가 오갈 수 있도록 친밀도를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인 대화만으로 끝나기 쉽다.

다음 회부터 어떤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풀어갈지 대충 밑그림은 그려졌다. 우선 김제동 자신부터 솔선수범해서 솔직한 내면을 풀어헤쳤다. 시청자들과 스타 사이에서 김제동이 해야 할 일은 적지 않다. 우선 스타에게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물어봐야 하고, 여행도 잘 이끌어야 하고, 스타의 속마음도 잘 전달될 수 있게 쇼를 진행해야 한다. 아마도 첫 방송에서 보여준 자신과 만남처럼 다른 스타도 만날 수 있다면 성공적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술, 담배, 바람 그리고 매드맨

사무실에서 틈만 나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 있다. 까마득한 과거인 거 같지만 50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1960년대 미국이다. 1960년대를 떠올리면 히피, 우드스탁, 마틴 루터 킹, 여성 인권운동 등이 떠오른 게 보통일 것이다. 이 시리즈는 격동의 사회변화가 일어나기 바로 전 1960년에서 시작한다. 백인 남자가 모든 권리를 다 쥐고 있고 각종 사회적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미국은 소련과 냉전상태였다.

담배연기가 뿌연 사무실처럼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과거가 “매드맨”이라는 생생한 드라마로 돌아왔다. 정말 미국의 1960년대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시절에 활동하던 광고업계 종사자에게 조언을 받고 시대적 분위기에 맞는 패션과 무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파는 광고업계의 현실을 직접 다룬 드라마가 미국 방송사에서 드물었다. 범죄물과 리얼리티쇼가 판치는 미국 방송에서 60년대 광고업계를 다룬 드라마는 확실히 별종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HBO와 Showtime 두 군데 방송사에 거절당한 경력이 있다. 그 덕에 프리미엄 채널이 아닌 기본 케이블 채널 AMC는 성공적인 히트작을 낼 수 있었다.

아마도 백인 남자 가운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비서와 은밀한 관계를 갖고 사무실에서 술과 담배를 마음대로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으니까. 거꾸로 생각하면 백인남자가 아니었던 여성, 흑인, 동성애자, 이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끔찍한 현실이다. 시민운동, 인권운동의 광풍으로 들어가면서 60년대는 변화의 시기가 되었다. 60년대를 다룬 다양한 책, 연구논문,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그 시기가 미국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매드맨”은 변화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갈등과 변화를 무시하지 않고 주류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다룬다.

타이틀 화면에서 검은 실루엣의 정장 차림의 남자가 고층빌딩에서 추락한다. 그 배경으로 60년대 광고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 타이틀 화면을 보고 이 시리즈에 마음에 끌렸다. 추락하는 사나이는 시리즈의 주인공 “돈 드레이퍼”다. 시리즈는 돈 드레이퍼의 좌절과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성공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도 추락은 술과 담배와 여자로 방탕했던 시대의 도덕적 추락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상품을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꾸며야 하는 광고업계의 모순적 상황에 대한 풍자였을까. 아니면 아메리칸 드림 성공신화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 효과일지도 모른다.

“매드맨”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화려한 타이틀 화면에 비해서 느리고 지루한 사건 전개 때문에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느리지만 단단한 전개로 담아낸 사회적 드라마를 보면서 그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돈 드레이퍼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상관의 사망을 계기로 그의 정체성을 훔쳐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부정한 채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의 아빠로 새 삶을 살고 있다. 가짜 정체성으로 채워진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촛불 같다. 어쩌면 사람들의 꿈에 기대어 거짓말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고계에 대한 은유가 바로 돈 드레이퍼이다. 광고는 허풍이고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다. 돈 드레이퍼처럼 성공적 이미지는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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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드레이퍼는 나쁜 주인공이다. 여자를 바꾸면서 수없이 바람을 피우고 아내가 모처럼 모델로 일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만두게 하는 자기중심적 남자다. 바람피운 것을 아내가 알게 되었어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외로움을 무기로 착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한다. 돈 드레이퍼는 이어지는 성공신화는 성공이 착하게 사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 시리즈의 다른 주인공은 “페기 올슨”은 비서로 일을 시작해서 카피라이터가 된다. 여성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여자들이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화 받고 타자기를 치는 비서가 전부였다. 페기는 남자 동료의 차별과 심지어 여자 비서의 시샘까지 온몸으로 받으며 이겨내야 했다. 페기는 카피라이트 능력이 뛰어났지만 제대로 된 사무실이 없어 복사기 옆에서 업무를 봐야 했다. 페기의 눈에 비친 돈 드레이퍼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아메리칸 드림도 백인 남자에게만 허락된 신화였다. 페기의 시점에서 회사는 성희롱과 성차별이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야만적 사회였을 것이다.

여성문제만 아니라 동성애자, 유대인, 흑인 차별에 관한 에피소드가 차분하게 절제된 어조로 등장한다. 광고인은 이런 사회문제 누구보다 민감하게 접근했다. 당장 상품판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흑인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무슨 텔레비전을 사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유대인에게 관광하는 이유를 물어보기도 한다. 광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판매에 빠질 수 없는 동력이다. 사회적 이슈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기업의 이익에 충실하게 봉사해야 하는 처지가 광고인의 운명이다. 나름대로 예술적 작업을 한다고 믿지만 결국 광고의 성공은 상품판매가 결정한다.

이 시리즈는 60년대를 돌아보는 시대극이지만 인간의 탐욕을 탐구하는 심리물로 볼 수도 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약점을 이용해서 몰아내고 밟고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쉽게 이성의 유혹에 빠지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원하는 대로 다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연구다. 해고당하는 동료를 위로하다가 사무실로 들어가서 뛸 듯이 기뻐한다. 바로 그 자리는 자신의 승진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씁쓸한 현실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도 마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인간의 잔인한 욕망일까.

또다른 이야기 축은 돈 드레이퍼의 과거이다. 시리즈가 전개될수록 그의 어두웠던 과거가 드러난다. 아내조차 모르는 돈 드레이퍼의 과거는 자아 찾기의 여행이다. 부끄러웠던 과거는 돈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찾아온다. 피하다가 서서히 받아들이게 된다. 돈 드레이퍼의 복잡한 내면이 투명해지는 순간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점점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 AMC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에미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휩쓸고 성장하고 있다. 이미 2010년까지 연장계약을 체결했으니 변화의 중심부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 60년대 후반부 격변의 시기를 어떻게 다룰지 무척 궁금하게 하는 시리즈다.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뉴욕의 광고인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참고로 “매드맨”이라는 용어는 매디슨 거리(Madison Avenue)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50~60년대 뉴욕의 매디슨가에 유명한 광고회사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광고인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60년대 미국 광고인의 사생활과 드라마가 궁금하다면 이 드라마를 봐야 한다.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 블루 시카고

누구나 여행을 하는데 테마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자연경관이 멋진 장소를 찾아다닌다. 어떤 사람은 축제나 공연만 쫓아다닌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지방의 유명한 음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한다. 나는 주로 미술관이나 공연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한다. 특히, 거리음악가의 공연을 즐기는 편인데 이번 시카고 여행에서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워낙 빠듯한 일정이라서 여유 있게 거리음악을 즐길 수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밤을 틈타서 블루스 바와 재즈 바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블루스 바는 생전 처음이었다. 블루스란 음악도 듣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갔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고 훨씬 색다른 문화적 충격이었다. 애초에 방문하려던 블루스 바는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해둔 “버디 가이스 레전드”란 곳이었는데 묵는 호텔이랑 너무 멀어서 포기하고 대신에 호텔 근처에 있는 “블루 시카고”로 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공연한 팀이 다른 날에는 “버디 가이스 레전드”에도 나온다고 한다. 뮤지션은 시카고 블루스 바를 돌고 도는 거라서 큰 수준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아내랑 시카고에 살고 있는 아내의 친구랑 셋이서 “블루 시카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블루스 바 가득히 울려 퍼지는 블루스 기타 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입장료로 10달러를 내고 무대 근처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각자 맥주 한 병을 시키고 바로 음악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 소리가 너무 커서 도저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날 공연은 린제이 알렉산더 밴드였다. 입담도 좋고 아주 걸쭉한 농담을 늘어놓는 흑인 할아버지였다. 기타 연주도 말할 것도 없이 끝내줬다. 특히 자신의 음악을 똥이라고 하는 표현도 재밌었다. 유명 밴드의 커버와 자신의 음악을 섞어가며 흥미진진한 공연이 무르익어갔다.

블루스라면 게리 무어 정도밖에 몰랐던 내게 정통 시카고 블루스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고 더욱 바닥으로 내려간 듯했다. “블루 시카고”에서 주로 공연하는 팀도 그런 정통 시카고 블루스라고 한다. 린제이 알렉산더가 하는 흑인 속어와 억양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주 노골적인 성 표현과 흑인 차별에 관한 노래도 몇 곡을 불렀다. 현대적 세련된 음색이 아닌 맥주 몇 잔이 걸친 듯한 아주 거친 음색으로 블루스 바가 터져나갈 기세로 내지르는 공연이었다. 그것도 두 시간이 넘게 지치지도 않게 연속으로 할 수 있는 그 힘과 정열은 놀라웠다. 입장료와 맥주까지 해서 15불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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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한참 빠져 있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백인 중장년이 주된 손님이었다. 동양인은 우리 셋과 앞 테이블의 일본인 네 명이 전부였다. 음악이 흥겨워지자 한두 노인 커플이 무대 근처로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끈적하게 몸을 밀착시킨 채 추는 춤이었다.  옛날 디스코텍에서 부르스타임에 추는 것보다 훨씬 강도가 높고 빠른 템포였다. 아마 그 분들의 그날 밤은 아주 뜨거웠을 것 같다.

시카고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블루스 바 순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날 블루스 바 체험으로 블루스에 더욱 빠지게 되었다. 이제 내 기억 속의 시카고는 블루스다. 블루스바 하나를 가지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클래식보다 블루스는 확실히 노동자 계급 문화에 가까웠다. 그날 보았던 손님 중에 하루의 노동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려 들른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도 있었다. 분위기가 고상한 상류층이 찾기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더라. 그런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이 아마도 이 가게의 주 고객층이 아닐까.

미국 방송에서 사라지는 객관적 보도

뉴욕타임스에 실린 CNN 광고는 폭스뉴스와  MSNBC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견제하고 있다. CNN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문을 나열하고 있지만 실제로 폭스뉴스와 MSNBC의 성장에 위기의식을 느낀 CNN의 다급함을 읽을 수 있다.

황금시간대 케이블 뉴스 시청률 경쟁에서 폭스뉴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폭스뉴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우파의 목소리다. 폭스뉴스의 우파 앵커들이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며 좌파 정치인이나 활동가를 공격한다.

폭스뉴스가 황금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기 전에는 CNN이 미국 최고 인기 케이블 뉴스로 군림했다. CNN은 객관 보도를 목표로 하는 중도 성향의 케이블 뉴스다. 그래서 자문할 사람을 고를 때도 우파 논평가와 좌파 논평가의 비율을 항상 고려해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앵커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CNN은 폭스뉴스에 밀리다 못해 최근에는 MSNBC에도 뒤처지게 되었다.

중도 객관을 지향하는 CNN이 밀리는 이유는 뭘까? 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홀로그램을 도입했고 ‘ireport.com’으로 시청자 참여를 유도하는 혁신을 거듭했다. 기술혁신이 CNN의 인기하락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보수의 나팔수가 되어서 거의 선동수준의 뉴스를 내보내는 폭스뉴스가 어떻게 중도객관의 CNN을 꺾을 수 있었을까. 달라진 시청자의 취향과 뉴스환경의 변화가 폭스뉴스의 성장에 기여했다. 뉴스의 홍수 시대가 도래하면 정말 다양한 채널로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지만 비슷한 관점의 뉴스가 대부분이다. 폭스뉴스는 보수적 시청자들에게 확실한 보수적 관점으로 해석한 뉴스를 제공한다. 보수 시청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대변해주는 뉴스를 향해 달려간다.

그동안 뉴스는 객관적 영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폭스뉴스는 시작부터 달랐다. 보수적 사업가 루퍼트 머독은 자신의 정치적 관점을 뒷받침해 줄 도구로 뉴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폭스뉴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보수적 시청자들만 믿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보수 성향의 시청자들이 모여서 폭스뉴스를 단번에 황금시간대 케이블뉴스 1등으로 올려줬다. 폭스뉴스는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뉴스로 명성을 굳히게 되었다.

폭스뉴스와 반대로 MSNBC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시청자를 겨냥했다. 레이첼 매도우 같은 진보적 성향의 동성애자를 앵커를 기용했다. 카운트다운의 앵커인 케이스 올버맨은 부시 행정부와 폭스뉴스의 스타 앵커 오라일리에 대한 비판적 뉴스로 유명해졌다. MSNBC는 폭스뉴스가 보수적 시청자를 모은 것처럼 진보적 시청자에게 호소하면서 서서히 성장해왔다.

미국 케이블뉴스는 단순한 사실 보도하는 기사에서 앵커의 논평과 해석이 담긴 기사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뉴스의 객관성은 신화처럼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으로 배우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보수 성향이 강한 미국의 뉴스 매체는 기업과 정부 중심의 기사가 다수를 차지한다. 노조 파업만 보더라도 노조의 입장보다 사주나 정부의 시각에 우선권을 주는 경향이 짙다. 얼마 전에 있었던 할리우드 작가노조의 파업에 관해 뉴욕타임스가 경영진을 옹호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케이블뉴스라고 해서 물리적 객관성을 지키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익원이 되는 광고를 통해서 케이블 뉴스를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평을 하지 않고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객관적 보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조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노조에 불리한 동영상만 편집해서 보여준다면 편들기 뉴스가 되어버린다. 뻔히 드러나는 뉴스의 편향성을 감춘 채 우리는 객관적이라고 말한다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뉴스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이룰 수 없는 꿈일 수도 있다.

시청자들이 단순한 보도 위주의 뉴스보다 논평과 뒤섞인 뉴스를 보는 것을 위기로만 볼 수는 없다. 뉴스의 객관성을 더는 믿을 수 없다는 시대정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국의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신문이 미국의 폭스뉴스처럼 보수의 대변지가 우뚝 선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객관적인 뉴스 매체를 찾기 어려운 시대에 그 가치에 매달리고 있는 시엔엔에서 멀어지는 시청자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뉴스의 미래는 폭스뉴스가 될 것인가. 이 역시 경계해야 한다. 폭스뉴스는 논평과 해석을 하는 것을 넘어서 사실을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앵커의 견해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스튜디오로 불러내서 모욕을 주는 것은 다반사다. 보수적 견해에 조금이라도 배치되는 인사들을 반애국적 인물로 몰아세우는 파시스트적인 과도한 해석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견해나 주장을 할 때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뉴스 매체일수록 그 원칙을 지켜서 공정한 뉴스를 생산해야 한다. 뉴스 매체가 중도객관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더라도 폭스뉴스처럼 사실을 오도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시청자는 멍청하지 않다. 보수의 가치를 아무리 객관성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교육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민의식도 그에 맞춰 성장한다. 절대 중립을 추구하는 객관뉴스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CNN이 달라진 시청자의 성향과 뉴스환경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계량적 중립성과 객관적 태도를 고수한다면 구시대의 뉴스매체로 대중에게 인식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블로그냐, 트위터냐

한동안 블로그 관리를 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있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트위터로 글을 쓰는데 더 정신이 팔려있었다. 올해 들어 블로그가 약간 주춤하는 사이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마이크로 블로깅이 놀랍게 성장했다. 내가 먼저 시작한 건 페이스북이었지만 한국인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IT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의 소개로 트위터 세계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스포츠 스타, 정치인, 연예인 그리고 마케팅,  IT업계 종사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트위터 커뮤니티에 대한 기사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온다. 한국에도 진출하지도 않은 정보기술서비스가 이렇게 많은 사용자를 모으기는 처음이 아닐까.

트위터의 인기가 놀라운 건 사실이지만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네이버 블로그 같은 대중적인 매체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기술에 민감한 사람들 중심의 서비스로 실험하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 나도 블로그에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한 트위터였다. 일단 분위기 파악을 위해 유명한 사람들 따라다녔다. 트위터의 관계 맺기는 따라가기(Follow)에서 시작한다. 아무나 따라가기를 신청할 수 있다. 중간에 마음에 안 들면 따라가기를 쉽게 중단할 수도 있다. 싸이월드의 일촌과 달리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자유롭게 트위터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스타, 지인, 동료 블로거 몇 명을 따라가면서 트위터 적응훈련에 들어갔다.

첫 날부터 내가 따라가는 사람의 글이 트위터에 들려왔다. 재잘거림이 들려오고 그냥 듣기도 하고 댓글을 쓰기도 했다. 트위터를 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트위터의 댓글이다. “@아이디” 다음에 이어지는 글이 댓글인데 원글 없이 보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짝이 되는 원글도 찾아야지 댓글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댓글과 원글을 동급으로 여기는 트위터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한동안 애먹었다. 댓글 구조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남들을 쫓아가면서 나도 뭔가 재잘거리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냥 되는대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함께 나누고 싶은 기사나 글을 짧은 생각과 함께 올렸다. 블로그 할 때와 다른 경험이었다. 긴 호흡의 글이 아니라서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다. 140자 제한이 걸려있는 트위터에서 긴 글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블로그는 소설이고 트위터는 시라 할 수 있을까. 가끔은 글자 수 제약 때문에 답답한 적도 있었지만 짧은 글로 표현하는 글의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트위터는 거대한 댓글의 공동체다. 짧은 글이 발단되어 다양한 반응을 들을 수도 있고, 간단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을 수도 있다. 심지어 각종 여론조사도 빠르게 할 수 있는 도구도 있다. 이런 대답과 댓글을 더 많이 들으려면 일단 자신의 트위터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적은 수의 사람들만 가지고 밀도 있는 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고, 그 수를 늘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 각자의 목적에 따라서 달라진다.

몇 달간 트위터를 써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트위터와 블로그는 상호보완적 매체로 활용할 수 있다. 긴 글로 쓰고 싶은 내용은 블로그로 쓰고 짧은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다면 트위터가 좋다. 휴대폰을 기반으로 발전한 트위터는 빠른 전달 매체이고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 마치 피라미드 조직처럼 연결된 트위터 커뮤니티는 글로 무수히 연결될 수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 기능이 내장된 휴대폰 매체는 기존의 컴퓨터 기반의 인터넷보다 기동력이 뛰어나고 편리하다. 아직 한국의 휴대폰은 트위터를 지원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 장점을 다 누리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그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트워터를 주로 쓰다 보니 블로그에서 쓰지 못한 글도 더 많이 쓸 수 있었다. 대중문화 블로그를 표방한 후에 개인적 감정을 담은 글은 블로그로 쓰지 못했다. 그런 욕구를 해소하는데 트위터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트위터는 단상글 쓰기 매체일 뿐 아니라 블로그 글 홍보 매체로도 훌륭하다. 그동안 블로그 소통창구는 메타블로그나 RSS 리더기였다. 트위터는 또 다른 창구가 될 수도 있다. 이것 말고도 트위터는 블로그 글쓰기 전의 과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쓰려는 글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도 있고 의외로 중요한 자료를 댓글로 얻을 수도 있다.

트위터가 어떻게 변화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블로거로 바라본 트위터는 위협적인 새로운 매체이기도 하지만 보완적 매체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트위터로 생각을 주고받다가 블로그 글로 쓰기도 하고, 때로는 블로그 글에 대한 의견을 트위터로 듣기도 할 수 있으니까.